아내의 손안에 있는 나의 안경
1993년 어느 날.
교회를 개척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교회 부흥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었다. 그러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힘쓰는 것이 그렇게 기뻤다. 조금이라도 더 기도 많이 하려고 우리 부부는 항상 교회에 일찍 갔다. 기도하는 우리 마음이 그렇게 간절할 수 없었다. 한참 기도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아내의 기도는 나 보다 더 간절한 것을 느꼈다. 아내는 심장도 약하고, 이빨도 약하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겁이 남들보다 유난히 더 많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참으로 순진하다. 어느 때는 항상 소년같이 순진할 때가 있다. 같은 또래의 나이에 있는 집사님들과 비교해 보면 말솜씨나 머리 돌아가는 것이 10년은 뒤 떨어진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몇 십 배는 더 진실하다. 교회를 개척할 때 산타클라리타 지역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강력하게 주장한 것도 아내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기로 유명한 나는 아내의 주장을 100% 수용하고 산타클라리타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작정하고 주님께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그 때는 참으로 홀홀 단신 이었다.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 하나 보조해 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개척교회의 장래는 암담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새벽 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볼 일이 있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 일찍 다운타운을 향해 산타클라리타 산 고개를 넘었다. 5번 FWY에 들어서면 아내는 으래히 “여보! 너무 달리지 마라” 힐끗 힐끗 속도 게이지를 쳐다보면서 성화를 부리곤 했다. 그래도 때로는 시간이 늦어지면 마음이 조급하여 속도를 줄일 생각은 아예 없고 “당신은 읊어라 나는 달린다.” 속으로 뇌까리면서 달린다. 그날도 여지없이 “여보! 속도를 줄여라” 성화가 시작되었다. 빨리 갔다가 아이들 Pick Up 하기에 늦지 않아야지 그런 생각에 속도를 줄일 생각을 안 했다. 얼마쯤 가다가 갑자기 아내가 “여보! 뒤에 경찰이 오는데 어떡하지?” 아주 심각해 말했다. 겁에 질린 나는 얼른 속도를 주렸다. 그리고 백미러로 열심히 뒤를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경찰이 안 보이는데” 그랬더니 “당신이 너무 달려서 그렇게 말 안하면 그냥 계속 갈 것 같으니까 혼 좀 나라고 그렇게 말을 했지!” 하면서 겁에 질려서 속도를 줄이는 나의 행동이 그렇게 통쾌 했든지 아내는 그렇게 깔깔거리면서 혼자 큰 소리로 웃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늦더라도 천천히 가자”면서 줄여진 속도 그대로 갔다. 아침에 다운타운으로 나갈 때면 습관처럼 뉴스를 듣는데 그날도 라디오를 켜고 뉴스를 들으면서 갔다. 아내는 뉴스 듣는 일이나 라디오 듣는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한참 뉴스를 듣다가 보니까 아내는 옆자리에서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생각이 멈춘 묵상을 하기 시작했다. 개척교회를 위하여 애쓰고, 저녁 늦게까지 성경보고 기도하고 또 새벽 기도 갔다가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왔으니 피곤이 한꺼번에 쏟아져 오는 모양이었다. “푹 자도록 내버려 두자” 그러면서 나는 아침 뉴스를 들으면서 내 생각에 잠겨 버렸다. 우리 교회는 언제 성가대가 생길까? 반주자는 언제 보내 주실까? 언제까지 기타로 주일 낮 예배 시간을 매꿔야 하나? 전도사 없는 주일학교와 학생회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런 생각 속에 잠겨 있다가 무심코 피곤하여 졸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온 얼굴이 피곤에 꽉 젖어 있었다. 옷은 몇 년 전에 사 입은 T-샤스를 아직도 입고 있었다. 졸면서 다문 입술은 아직도 몇 년 전 알라스카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찢어져서 큰 흉터가 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거기에 대해서는 큰 원망이나 좌절이나 불평은 없었으나 여자로써 아무리 사모지만 얼마나 가슴 아플까?”하는 생각이 불현 듯 새삼스럽게 뇌를 스쳐갔다. 잠시 생각을 다시 교회로 돌려서 빨리 우리 교회도 부흥하여 건축하고 헌당하는 날이 와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아내를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고개를 의자 뒤 머리 부분에 닿게 살짝 밀어주고는 약간 의자를 뒤로 제껴 주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다른데 같았으면 의자가 뒤로 넘어갈 때 금시 깨었다가 다시 자는데 그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좀 편하게 자게하고 난 후에 아내의 손목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찡하게 느껴왔고 코끝이 시끈했다. 아내의 손에는 잠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꼭 쥐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안경이었다. 선글라스로 바꾸고 난 후에 내 안경은 아내에게 넘겨주었는데 아내는 그 안경을 곱게 닦아서 손자국이 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남편의 안경다리를 쥐고 잠이 든 것이다. 잠결에 안경을 쥐고 있는 아내의 손길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달구어져 내 가슴에 충만히 전달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모습만 보여 주면서 말이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아내의 손 안에 있는 안경을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얼마나 그 모습이 순진하고 어린아이 같은지 영영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의 안경을 쥐고 있는 아내의 손목은 마치 사탕을 쥐고 너무 좋아서 먹다가 그대로 잠든 애기의 손길과 같았다. 언젠가는 이 모습을 글로 써야지 마음을 먹었다. 제목을 무엇이라고 할까? “아내의 손안에 있는 나의 안경” 꼭 그렇게 제목을 붙이자. 마음먹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 새벽 기도를 마친 후에 고 훈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썼다. 아내의 손 안에 있는 나의 안경 그것은 아내의 손 안에 있는 나의 사랑이었다.